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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9-11 12:43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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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관습과 고정관념 깬 시도들.. 그가 한국 축구에 남긴 '진정한 유산'
[이준목 기자]



▲ 거스 히딩크 감독. (자료 사진)
ⓒ 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의 은퇴 선언이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다수의 외신들은 히딩크 감독이 10일 네덜란드 방송 'SBS 6'에 출연하여 맡고 있던 "네덜란드령 퀴라소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앞으로 더 이상 다른 팀을 맡는 일 없이 감독직에서 은퇴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1946년생인 히딩크 감독의 현재 나이는 75세다.
히딩크 감독은 일시적 은퇴인지 영원한 은퇴인지 묻는 질문에 "아드보카트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딩크 감독이 언급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것만 세 번째이며 현재 이라크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히딩크 감독이 은퇴 의지가 확실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를 꿈꿨던 히딩크

히딩크 감독은 현역 시절 미드필더 출신으로 1960~1970년대 모국 네덜란드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보냈다. 1982년 축구화를 벗은 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1987년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에서 처음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도자 경력 34년간 클럽팀으로는 페네르바체(터키),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이상 스페인), 첼시(잉글랜드), 안지 마하치칼라(러시아) 등을 이끌었고, 네덜란드(2회)-호주-대한민국-러시아-터키-퀴라소 등 각국 대표팀 감독직도 다수 역임했다. 수많은 명장들이 그렇듯 히딩크 역시 현역 시절에는 국가대표 경력 한 번 없는 평범한 선수에 가까웠다면, 오히려 지도자로서 세계적인 두각을 나타낸 케이스다.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과 인터뷰 등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부터 프로 선수로서 성공하기보다는 지도자를 목표로 했다. 20대에 일찌감치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여 선수 겸 코치로 활약했고, 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선수생활을 병행하면서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때 쌓은 경험은 훗날 그가 정식 감독 생활을 할 때 다양한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동기부여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자로서 히딩크 감독의 전성기는 1980~1990년대 PSV 아인트호벤과 네덜란드 대표팀 등을 이끌며 유럽에서 '콧수염의 명장'으로 명성을 쌓은 1기, 2002년 한국대표팀을 맡고난 것을 전환점으로 가히 전 세계를 누비며 활약한 '글로벌 더치맨' 시절의 2기로 나뉜다.

히딩크 감독은 자국 명문인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1988년 트레블(3관왕)을 달성하며 세계적인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1998년 월드컵에선 자국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을 5-0으로 대파하며 한국축구와 첫 인연을 맺었고 팀을 4강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 등의 사령탑을 맡았지만 모두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조기에 경질되고 한동안 하향세를 겪었다.

당시 히딩크 감독에게 월드컵 개최국이지만 본선에서는 정작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 대표팀 사령탑은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축구계의 유례 없는 전폭적 지원과 개최국의 홈어드밴티지, 여기에 본인의 풍부한 지도자 노하우를 결합하여 2002년 4강 신화이라는 기대 이상의 업적을 이뤄냈다. 결승골이 터지자 불끈 쥔 주먹을 하늘로 찌르며 포효하던 히딩크의 '어퍼컷 세리머니',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던 어록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히딩크 감독은 유럽 축구계 주류로 다시 명예롭게 귀환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다시 한번 복귀하며 4년간 팀을 3번이나 정상에 올려놓았고 2005년에는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성과도 올렸다. 당시 박지성과 이영표라는 한국축구의 두 레전드를 유럽으로 데려가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2006년에는 호주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독일월드컵 16강을 이뤄냈으며, 2008년에는 러시아 대표팀을 맡아 유로 2008 본선 4강이라는 또 한 번의 쾌거를 일궈내며 '히딩크 매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9년에는 러시아대표팀을 겸직하면서 잉글랜드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아 FA컵 우승을 견인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0년대는 히딩크 감독의 커리어가 서서히 내리막길에 접어든 시기였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러시아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한 것을 시작으로, 터키 대표팀-네덜란드 대표팀 2기, 러시아 클럽 안지 마하치칼라-잉글랜드 첼시 임시 감독-중국 23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연이어 잡았으나 모두 기대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2020년 8월 퀴라소 감독으로 깜짝 부임해 2022 카타르 월드컵 북중미 2차 예선까지 올려놓는 성과를 거뒀으나.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FC바르셀로나 아카데미 디렉터에게 임시로 지휘봉을 넘겨줘야 했다. 히딩크 감독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퀴라소는 파나마와 치른 2차 예선 1, 2차전에서 합계 1-2로 져 3차 예선 진출이 좌절됐다. 히딩크 감독은 "코로나19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데다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고, 북중미 골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축구의 정체성이 된 '히딩크 스타일'



▲ 스페인과의 한일 월드컵 8강 결전을 하루 앞둔 지난 2002년 6월 21일 오후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당시 히딩크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벌써 19년이 흘렀지만 한국에서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역대 최고의 대표팀 감독'으로 회자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이전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던 한국축구에게 세계무대에서 강팀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방법을 가르쳐줬고, 대표팀이 대표팀답게 운영되기 위한 시스템을 최초로 구축했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와 압박축구라는 히딩크호의 스타일은 10년 넘게 한국축구의 정체성이 됐다.동행복권파워볼
그가 발굴해낸 선수들 다수가 유럽무대까지 진출하거나 K리그의 주축으로 오랫동안 활약했고 이후 한국축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한국대표팀을 떠난 이후에도 히딩크 재단을 설립해 장애인과 유소년 전용 풋살구장인 히딩크 드림필드를 전국 각지에 설립해 기부 문화를 실천하는 등, 한국축구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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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히딩크 감독 역시 당연하게도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과 4강신화가 남긴 그림자가 너무 거대하다보니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대표팀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아지며 이후의 감독들은 항상 히딩크를 기준으로 비교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월드컵 개최국이었던 2002년의 특수성과 K리그의 희생 등을 고려하지 않고 히딩크 혼자 모든 것을 이뤄냈다는 지나친 '신격화'는 합리적인 비판과 재평가까지 가로막았다.파워볼사이트

2017년 벌어진 히딩크 감독의 한국축구 대표팀 복귀설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축구는 신태용 감독체제에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짓고 난 후, 히딩크 감독이 언론을 통하여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 감독직을 맡고싶다는 의사를 표시하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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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파 감독에 대한 불신, 맹목적인 히딩크 판타지에 매몰된 포퓰리즘 등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히딩크 감독 역시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는 처신을 보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냉정히 말하면 이 당시에 이미 히딩크 감독은 적절한 은퇴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 2010년대 이후의 히딩크 감독은 더이상 현대축구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예전의 번뜩이는 지략도 선수장악력도 보여주지 못하며 하락세를 거듭하는 저니맨 감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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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국축구가 지금도 시대를 뛰어넘어 히딩크 감독이 남긴 유산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발상의 전환'에 대한 중요성일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 "강팀을 이기고 싶다면 평가전부터 강팀과 경쟁하라", "포메이션은 숫자놀음", "두 가지 이상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의 중요성", "베스트 11을 빨리 확정할 필요는 없다", "그라운드 안에서 선후배는 없다"는 수많은 어록이 말하는 공통된 부분은, 한국축구의 '오랜 관습과 고정관념'에 대한 과감하고 파격적인 문제제기였다.파워볼

엄청난 슈퍼스타 없이도 이처럼 기본적인 사고과 의식의 전환만으로, 얼마든지 더 나은 축구가 가능하다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게 바로 히딩크 감독 시절의 교훈이다.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서 대하여 2002년의 히딩크만큼 새로운 패러다임을 뚜렷하게 제시한 인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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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방식'은 이후로도 역대 대표팀 감독들과 한국축구의 기준이 됐다. 그리고 2021년의 한국축구에게 히딩크의 추억은 계승해야 할 유산임과 동시에 앞으로 극복하고 넘어야 할 새로운 목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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